과거의 생각, 뒤돌아보기 - 153일의 겨울
저자 : 자비에 로랑 쁘띠
출판사 : 청어람주니어
과거 글 작성 : 2010년 01 ~ 06월 사이
글 작성 : 2017.01.21(Sat)
이 책을 처음 읽게 된 계기는 그 당시 다녔던 논술 학원 선생님이 추천해주셔서였다. 항상 생각할 수 있는 많은 책들을 소개시켜주셨다. 현재 많은 생각을 할 수 있게 된 원동력도 이 학원에서 읽었던 많은 책들 덕분이다. 2010년은 한국 나이로 15살, 중학교 2학년이었다. 아마 이 책은 논술 학원을 다니면서 쓴 마지막 책이지 않았나 싶다.
꽤 오랫동안 논술 학원에서 읽고 쓴 독후감들을, 내 감정과 생각들을 D드라이브 백업 폴더에 남겨놓기 싫었다. 자발적이진 않지만 학원을 통해 만들어진 책을 읽고 쓰는 독후감들은 여전히 나에게 좋은 습관으로, 자산으로 남겨져 있다.
거의 7년이다. 사실 153일의 겨울, 내 독후감의 제목을 보고, 이 책의 내용이 무엇인지 전혀 알 수 없었다. 하지만 내가 쓴 글을 보면서, 그 당시 생각했던 감정들이 떠오르기 시작했다. 참 신기하다. 독후감의 장점은 이런게 아닌가 싶다. 논설문 같은 경우는 몇년 뒤 내 글을 읽어보면 이게 과연 내가 썼던 것인지 의문이 들 때가 굉장히 많다. 하지만, 독후감은 감정을 글에 녹여내는 작업이다. 기억은 없어져도, 감정은 평생 남겨져 있는 것 같다.
7년 전 이 책을 읽고난 후 몇 일간 꿈에서 내 팔에는 항상 독수리가 있었다. 그 독수리와 나는 서로 감정을 공유할 수 있었다. 난 내 독수리와 이 책의 주인공인 갈산과 그녀의 독수리보다 더 다양한 활동을 상상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런 상상이 행복했다.
나에게 상상은 세상의 지루함을 벗어나는 방법 중 하나였다.
갈산에게는 아버지 리함, 어머니 다알라와 할아버지 바이타르가 있다. 리함은 우랄을 몰고 수 천, 수 만 킬로미터를 달리고 돌아오기 때문에 다알라를 돌보기는 힘들다. 집도 작아 3명 이상 살기 어렵다. 다알라는 아기를 배고 있다. 몇 번 아기를 낳았지만, 안타깝게도 유산이었다. 이번에는 더 편안한 환경을 조성하기 위해, 처제가 다알라를 돌보고, 갈산은 바이타르에게 보내진다.
바이타르와 갈산은 서로 사이가 그렇게 좋은 편은 아니다. 바이타르는 몽골의 전통적이 생활방식대로 살고 있다. 그는 리함에게 자신의 일을 물려주고 싶어했지만, 리함은 목동일을 하지 않고 영어 선생님인 다알라와 허락 없이 결혼을 했다. 리함과 다알라가 손자를 낳았으면 바이타르의 일을 물려줄 수 있었겠지만, 갈산은 여자였다.
갈산은 어렸을 때 말 다루는 방식 등을 배워서 바이타르가 살고 있는 차궁에 도착했어도 어려움 없이 지낼 수 있었다. 재무쇠라는 말로 바이타르와 경주를 해도 전혀 밀리지 않았다. 갈산은 학교를 다녀야 했지만, 바이타르는 교육과 감독관을 돌려보내고, 학교에서 가르치는 셈과 글을 읽을 수 있는 방법 대신 하늘 위에 날라다니는 검독수리를 기르는 방법을 가르쳐주었다. 바이타르는 검독수리를 어르신으로 모시고 있었다. 그런 검독수리를 갈산이 바이타르의 도움을 받아 잡게 되고, 쿠다야 어르신이라고 부르게 된다.
갈산은 바이타르, 쿠다야와 함께 죽음의 흰 가루라고 불리는 ‘쭈뜨’에서 버티고, 늑대와 짐승들 사이에서 151일간 버텨나간다.
다알라는 다행히도 아기를 잘 출산하게 되고, 갈산도 153일 만에 집으로 되돌아오게 된다. 집까지 따라오는 쿠다야에게 자유도 준다. 다알라는 꿈속에서 이 독수리 쿠다야에게 갈산의 소식을 들어 놀라워했다.
‘현대인들의 삶 속에서 행복의 지표가 되는 것은 소유와 경쟁이다. 타인 보다 많은 것을 소유하고 경쟁에서 이겨 우월한 지위에 놓여야만 현대인들은 행복하다고 생각한다. 그런데도 통계적으로 보자면 경제적 풍요로운 나라가 행복지수에서 상위권을 차지하지 못한다고 한다. 그리고 꼭 부자들만이 행복은 누리는 것도 아니다. 바이타르는 얼마 되지 않은 소유물을 가지고 혹독한 자연 속에서 살아가지만 그의 삶은 알 수 없는 무엇인가로 충족되고 여유가 느껴진다. 인간을 행복하게 만드는 것은 무엇일까. 물질이나 지위에 대한 욕망은 그것을 성취하는 순간 조금 더 높은 목표 앞에 놓이게 된다. 소유에는 만족이 없으며 경쟁 또한 끝없이 이어지기 때문이다.
만약 지금 시대에 말을 타거나 유목 생활을 한다고 하면 웃을 것이다. 지금 이렇게 발달된 현대 사회에서 말을 탈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더 편리하고 안락한 것을 원한다. 현대에는 예전보다 많이 편리해졌고 좋은 생활이 되었다. 그러나 옛날 사람들과 비교해 볼 때 과연 현대에서, 지금 살고 있는 이 시대가 과연 옛날 사람들에 비해서 행복할까?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우리는 지금 행복에 대한 관념을 새로 뜯어 고쳐야 한다. 행복이란 물질의 풍요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
이게 독후감의 마지막 문단이었다. 난 이때부터 행복에 대한 고민을 했고, 사회 구조에 대한 고민을 했다. 하지만 난 고등학교 3년 동안은 경쟁 속에서 헤매이고 있었고, 나한테 과연 행복이 무엇인지 전혀 고민할 수 없었다.
대학교 와서 소유와 경쟁이라는 가치를 대신할 수 있는 해답을 무의식적으로 찾다가, 공유경제와 사회적가치를 그 해답으로 내세웠다.
공유와 커뮤니티
이게 꼭 답은 아니다. 내가 내세운 해답 속에서 아직 행복을 찾지 못했기 때문이다. 2015년, 2016년 3분기 까지만해도 이 해답을 증명해내기 위해 앞만 달려왔지만, 아무런 성취를 얻지 못한 나는 우울해졌다.
지금은 앞으로 나아가기 보다는 다시 재정비할 시기이다.
책은 여전히 나에게 많은 생각을 하게 한다. 많은 정보를 주는 책들도 분명 좋지만, 이렇게 나의 감정과 생각을 발전해 나갈 수 있는 책도 읽어야 한다.
정말 누구도 아닌 ‘나'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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